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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fe/& Latte of 아르미

다사다난 군스토리 - 10 (건강보험)

때는 2019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업무를 하고 있는 와중에 위병소에서 전화가 왔다

 

위병소장 - "상전장교님! 위병소에 손님 한분이 오셨는데 인사처에 볼 일이 있으시답니다"

나 - "누군데? 신원을 알아야 담당자하고 얘기를 하지"

위병소장 - "신원은 확인 중이고, 분명 인사처 담당자와 얘기해야할 내용이라고 하십니다"

나 - "내가 갈게"

 

나는 위병소로 내려갔다

인사처 방문을 목적으로 왔다는 사람은 아주 옛날에 우리 부대에서 군복무를 했던 사람이었고,

건강보험관련해서 문제가 있어서 해결하기 위해 방문했다고 했다

 

일단 내 담당 업무가 아니어서 사무실로 모셔오긴 했는데 정작 담당하시는 선배님이 자리를 비우셔서

커피 한잔 드리면서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사건의 내막은 이러했다

본인(이하 'A씨')은 30대 중반이고, 20대에 우리부대에서 부사관으로 복무를 했었단다

의무 복무기간을 마치고 전역해서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작은 회사에 직원으로 들어가서 10여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새로운 직장을 구해서 관련 제출 서류를 떼는 과정에서 4대보험 중 건강보험에 오류가 있음을 파악한 것이다

마치 코로나 역학조사를 하듯 문제가 발생했던 시점으로 돌아가보니 군부대 시절부터 오류가 나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위해 직접 부대를 방문했던 것......

 

우리는 빠르게 상황파악을 위해 신분조회를 했고, 그 결과 직장인 건강보험으로 A씨가 가입이 되어 있는걸 발견했다

일단 가장 큰 실수는 우리가 저지른게 맞다

군대에서 건강보험관련 업무를 어떻게 처리하냐면....

 

- 부대원이 전입오면 사단 안전장교가 건강보험 자격득실 내용을 업데이트 받는다.

- 건강보험공단에서 매월 명단을 보내주기도 하고, 상급부대에서 우리부대로 공문을 하달해주기도 한다.

- 건강보험 자격 획득이야, 군에 입대하는 순간부터 적용이 되니 우리가 할 일은 아니지만, 자격 상실에 경우 사람마다 전역일도 다르고, 각종 사건사고 등으로 변경되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안전장교가 월마다 결산하는 개념으로 정리를 한다.

- 건강보험공단에서 보내주는 명단과 안전장교가 월마다 정리해놓은 자격득실 데이터를 비교대조해서 일치화 시켜주는 작업을 하게된다.

- 이 일치화 작업에서 건강보험 자격상실 신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사단을 기준으로 예하부대 전 장병을 안전장교 한사람이 관리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확인하고 조치할 수 있었지만, A씨가 복무했을 당시에는 이 과정이 연대 인사 담당자가 했던 업무여서 연대에서 '이상없음'으로 보고하면 사단에서도, 그 위 부대에서도 '아~ 이상없구나'하고 그냥 넘기는거다.

 

상황이 그냥 전체적으로 다 웃기다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격상실 신고 누락자가 있다는걸 여태 파악 못한 우리도 웃기고,

따박따박 건강보험공단에 보험료를 납부해준 육본도 웃기고,

그걸 아무 문제없이 꼬박 받아온 건강보험 공단도 웃기고,

본인의 보험료를 군대가 대신 납부해주고 있었다는걸 여태 모르고 있던 A씨도 웃기고...

 

여기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냥 정상적으로 자격상실을 하면 된다.

물론 10여년동안 아무도 모른채 방치해온 잘못은 있지만, 자격상실을 하면 모든게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화목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지.....

우리가 A씨의 건강보험 자격상실을 신고하는 순간,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지금까지 납부된 보험료가 오납부가 되어버렸고, 이걸 우리에게 돌려주면서 A씨에게 미납 보험료로 폭탄을 때려버리는 것이다.

무려 소형차 한대값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A씨는 심지어 전역과 동시에 아버지 밑에서 일을 해와서 4대보험 가입도 없이 편하게 살아왔고, 그러니 더더욱 건강보험 납부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A씨가 새로운 직장에 입사를 하려면 이 건강보험 미납료를 납부해야하고, 납부하지 않으면 본인 소유의 모든 재산이 압류되는 상황이라 참으로 난감한 상황.....

 

A씨는 최초에 우리부대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니, 적어도 어느정도는 책임을 져야하는거 아니냐라고 억울한 마음을 표출하였으나, 10여년이 지난 일을 지금의 담당자가 책임을 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보험료는 본인이 납부를 했어야 했고, 하지만 본인의 잘못도 없는건 아니기 때문에 서로가 아쉬운 소리만 할 수 밖에 없는 애매한 상황.....

 

결국 A씨는 자격상실신고라는 문제만 해결한 채, 씁쓸하게 돌아갔고, 안전장교님은 도의적인 책임(?) 안쓰러운 마음에 상급부대와 여러방면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을 본 것으로 이 사건의 관심을 껐다

 

내가 '일을 잘해야지'라는 마음보다 '똑바로 철저히 해야지'라는 마음을 더 크게 먹고 항상 이중 삼중으로 검토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던 아주 큰 경험이었다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사(人事)'의 자리는 정말 무거운 책임감이 있는 자리다